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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만 스쳐도 아프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 방치하면 만성 통증 된다
대상포진은 어린 시절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몸속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다시 활성화되며 피부에 심한 통증과 물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적절히 치료하면 피부 병변은 2~3주 안에 호전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발진이 사라진 뒤에도 한 달 이상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고 한다. 한번 신경통이 시작되면 완치가 어려워 일상생활이 크게 위축되고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어, 대상포진 급성기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대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임의성 원장(임의성마취통증의학과의원)과 함께 자세히 알아본다.
수두 바이러스가 대상포진으로... 수십 년 잠복하다 면역 떨어지면 깨어난다
대상포진은 어린 시절 수두를 앓은 뒤 몸속에 남아 있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 VZV)가 원인이다. 이 바이러스는 수두를 앓고 난 뒤에도 체내에 남아 척추의 후근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 기능이 떨어졌을 때 재활성화되어 증상을 일으킨다.
수두를 앓고 나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에 특화된 기억 T세포가 형성되어 신경절에 잠복한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감시 역할을 한다. 문제는 나이가 들거나 면역억제 약물 복용, 암 치료, 에이즈 등으로 T세포 매개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된다는 점이다.
임의성 원장은 "재활성화된 바이러스는 감염된 감각신경을 따라 이동하며 신경세포에 손상을 입힌다"라며 "이후 해당 신경이 지배하는 피부 분절까지 도달해 수포성 발진을 형성한다"라고 설명했다.
발진은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던 신경절에 따라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가장 흔한 발생 부위는 흉추 신경 분절로 전체의 50~60%를 차지하며, 그다음으로는 얼굴을 담당하는 삼차신경절이 15~20%다. 목과 허리가 각각 10% 내외, 엉치가 5% 내외로 뒤를 잇는다.
"칼로 베이는 듯, 전기가 오는 듯"... 신경통은 왜 만성으로 이어지나
대상포진 발진이 사라진 뒤에도 한 달 이상 통증이 지속되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PHN)으로 진단한다. 60세 이상 대상포진 환자의 20~50%, 70대 이상에서는 50%가 발진 소실 후 6개월이 지나도 통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통이 만성으로 이어지는 데는 두 가지 핵심 기전이 있다. 임의성 원장은 "첫 번째는 신경 손상으로 통증 전달 체계가 과민해지는 감작(sensitization)으로, 약한 자극에도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며 이어 "두 번째는 구심성 신경 입력 소실(deafferentation)로, 감각신경이 손상되면 정상적인 감각 입력이 사라지고 통증 회로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이질통·자발통·이상감각 같은 신경병증성 통증이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단순한 염증 반응이 아니라 신경계 자체가 손상된 결과다. 급성기 대상포진의 통증이 염증 반응으로 인한 욱신거리고 화끈거리는 양상이라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이와 다르다. 환자들은 "칼로 베이는 듯한", "불에 타는 듯한", "전기가 오는 듯한" 통증이라고 표현하며, 옷깃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물집이 생기기 며칠 전부터 피부 표면이나 깊은 곳에서 심한 통증이 먼저 나타나고, 감기몸살과 비슷한 전신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급성기 72시간이 골든타임... 완치보다 통증 관리가 목표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통증이 심해지면 수면 장애로 이어지고, 활동량이 줄어들며 우울감이 동반되는 등 만성통증 환자의 전형적인 경과를 밟게 된다. 특히 삼차신경을 침범한 경우에는 다른 부위보다 훨씬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임의성 원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된 말초신경이 조금씩 회복하고 중추신경계 과흥분도 가라앉으면서 증상이 호전되기도 한다"면서도 "그러나 얼마나, 어느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치료의 목표는 완치가 아닌 통증 관리다. 통증을 줄여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며, 통증은 주관적인 감각인 만큼 치료 효과도 환자가 표현하는 통증 정도로 평가한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은 수포 발생 후 72시간 이내다. 임 원장은 "이 시기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 바이러스 증식을 직접 억제해 신경절의 염증을 줄이고, 신경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급성기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사용하며, 이 시기에 이미 신경 손상이 진행되는 만큼 신경병증성 통증 약물도 함께 활용된다.
신경통이 발생한 이후에는 신경병증성 통증 약물, 항우울제, 국소 마취제 패치, 신경차단술 등 다양한 치료법을 환자의 반응을 보며 조합해 처방하며, 통증 감소뿐 아니라 우울·불안 감소, 불면증 완화도 치료 목표에 포함된다.
"예방접종이 최선"...대상포진 백신, 신경통 이행률도 낮춘다
대상포진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방이다. 현재 사용되는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은 예방률이 9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임 원장은 "이 백신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특화 기억 T세포를 크게 증가시켜, 대상포진에 걸리더라도 신경절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전에 면역세포가 빠르게 제거하도록 돕는다"라며 "그 결과 신경 손상 자체가 줄어들고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행하는 비율도 현저히 감소한다"라고 설명했다.
대상포진은 피부 병변이 호전됐다고 해서 치료가 끝난 것이 아니다. 발진이 사라진 뒤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